상상해보세요. 뻥 뚫린 고속도로를 시속 150km로 신나게 달리고 있습니다. 타고 있는 차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날씨마저 완벽해서 기분이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음악을 크게 틀고 여유를 부리던 찰나, 갑자기 내비게이션에서 “전방에 급커브 위험 구간입니다. 감속을 준비하세요”라는 단호한 경고 방송이 흘러나옵니다. 아직 브레이크를 밟지도 않았고 눈앞의 도로는 여전히 직진이지만, 여러분은 반사적으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고 운전대를 꽉 쥐며 긴장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정확히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케빈 워시(Kevin Warsh) 신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미국의 중앙은행) 의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진행한 회의에서 시장을 향해 ‘경고 방송’을 내보냈고, 잘 나가던 증시는 곧바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요동쳤습니다 [‘연내 1회 금리인상’ 연준 매파 신호에 뉴욕증시 급락…나스닥 1.35%↓ [투자360] - 헤럴드경제]. 내 계좌의 주식들이 왜 갑자기 파랗게 질렸는지, 오늘 그 이유를 알기 쉽게 풀어드리겠습니다.
미국 증시는 전 세계 경제의 나침반이자, 평범한 직장인들의 연금과 개인 투자 계좌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생태계입니다. 이번 발표가 있기 전까지 최근 며칠간 미국 증시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우량 기업들을 모아놓은 대표적인 지수인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3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분위기를 탔고, 장중 한때 역사상 최초로 5만 2,000선이라는 꿈의 숫자를 돌파하기도 했습니다 [워시發 매파 쇼크에 뉴욕증시 급락…시장, 10월 금리인상 베팅 [월스트리트in]]. 이는 마치 마라톤 선수가 인간의 한계라 불리던 기록을 깨고 신기록을 세운 것과 같은 환호성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인 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올해 금리를 안 내릴 수도, 오히려 인상할 수도 있다”는 엄중한 분위기를 풍기자 파티장은 차갑게 얼어붙었습니다 [‘연내 1회 금리인상’ 연준 매파 신호에 뉴욕증시 급락…나스닥 1.35%↓ [투자360] - 헤럴드경제].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투자자들은 실망감에 주식을 대거 팔아치웠고, 뉴욕증시를 대표하는 3대 지수가 일제히 1% 안팎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내가 투자한 자산의 가치가 워싱턴에서 열린 회의 한 번에 크게 출렁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낯설고 어려운 경제 뉴스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두 가지 핵심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금리와 주식의 관계’, 그리고 ‘매파적 신호’입니다. 쉽게 말해서 이 두 가지가 증시의 온도를 결정하는 핵심 리모컨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기준금리는 주식시장에 작용하는 강력한 ‘중력(Gravity)’과 같습니다. 경제 상황을 물리학에 비유하면 이해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금리가 낮다는 것은 시중에 풀린 ‘돈의 무게’가 가볍다는 뜻입니다. 기업들은 싼 이자로 가볍게 돈을 빌려 공장을 짓고 첨단 기술에 투자하며 쑥쑥 성장합니다. 투자자들도 이자를 거의 안 주는 은행에 돈을 묶어두기보다는 수익률이 높은 주식 시장으로 돈을 굴립니다. 중력이 약해지면 물건들이 두둥실 떠오르듯, 주가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 탄력을 받습니다.
반대로 금리가 올라가면 중력이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합니다. 기업은 매달 갚아야 할 이자가 버거워 투자를 주저하게 되고, 일반 투자자들은 “주식처럼 위험한 곳에 마음 졸이며 돈을 두느니, 이자를 많이 주고 떼일 염려가 없는 안전한 국채(국가가 발행해 이자를 쳐주는 채권)나 은행에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자”며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버립니다. 이번 회의에서 연준은 당장의 기준금리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동결했습니다 [Stock market today: Dow, S&P 500, Nasdaq slide as Warsh’s Fed edges closer to rate hike]. 하지만 동시에 “연내 0.25%포인트 수준의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 [3분증시]뉴욕증시, 연준추가인상위험에하락…나스닥1.5%], 미래의 무거운 중력을 미리 감지한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고 대규모 주식 매도세가 쏟아진 것입니다 [‘연내 1회 금리인상’ 연준 매파 신호에 뉴욕증시 급락…나스닥 1.35%↓ [투자360] - 헤럴드경제]. 비록 0.25%포인트라는 숫자가 아주 작아 보일지 몰라도, 수백조 원이 오가는 거시 경제에서는 수천억 원의 비용이 엇갈리는 엄청난 지렛대 역할을 합니다.
둘째, ‘매파적(Hawkish) 신호’란 무엇일까요? 경제 기사에서는 중앙은행의 성향을 종종 새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물가가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경제를 꽉 조이는 엄격한 성향을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매’에 비유하여 ‘매파’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경제 성장을 돕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시중에 돈을 넉넉히 푸는 온화한 성향은 ‘비둘기파’라고 하죠.
이를 우리가 흔히 겪는 상황에 빗대어 엄격한 헬스 트레이너(매파)와 친절한 영양사(비둘기파)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엄격한 매파 트레이너는 회원의 기초 체력(물가 안정)을 단련하기 위해, 당장 회원이 근육통에 비명을 지르고 힘들어하더라도(경제 및 증시 둔화) 바벨의 무게(금리)를 높이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케빈 워시 신임 의장과 연준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이 단호한 헬스 트레이너의 모습이었고, 이자율(금리)이 인하될 것이라며 달콤한 휴식을 기대하던 시장이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친 셈입니다 [‘연내 1회 금리인상’ 연준 매파 신호에 뉴욕증시 급락…나스닥 1.35%↓ [투자360] - 헤럴드경제].
숫자로 들여다본 증시의 충격은 상당히 컸습니다. 5만 2,000선이라는 고지를 밟으며 환호성을 지르던 다우지수는 전날 대비 507.12포인트(0.98%) 하락한 5만 1,492.55로 주저앉으며 어렵게 돌파했던 기록을 다시 내어주었습니다 [워시發 매파 쇼크에 뉴욕증시 급락…시장, 10월 금리인상 베팅 [월스트리트in]]. 단순한 숫자 하락 같지만, 시장 전체로 보면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본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셈입니다. 다우지수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500개 대형 기업을 묶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21% 하락한 7,420.10으로 장을 마쳤고, 특히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1.35%라는 가장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이며 2만 6,021.66으로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워시發 매파 쇼크에 뉴욕증시 급락…시장, 10월 금리인상 베팅 [월스트리트in]].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왜 하필 대형 기술주(빅테크)들이 직격탄을 맞았는가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쓰는 서비스를 만드는 기술 기업들은 현재 창출하는 수익보다 ‘미래의 잠재적인 성장성’을 바탕으로 주가를 높게 평가받습니다. 이들은 혁신적인 인공지능(AI)이나 첨단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당장 어마어마한 돈을 끌어와 투자해야 합니다. 실제로 최근 시장에서는 대규모 AI 설비 투자 확대에 대한 비용 부담감이 이미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안 요소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 [해외선물 실시간]뉴욕증시, AI 설비 투자 확대 부담에하락…나스닥…]. 이처럼 짊어져야 할 짐이 무거운 상황에서 금리마저 오른다는 소식은 기술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심각한 제동이 걸릴 수 있음을 뜻합니다.
그 결과는 즉각적이고 매서웠습니다. 하루 만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인 메타의 주가는 5.5%나 급락했고,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도 5%나 곤두박질쳤습니다 [[뉴욕증시] 스페이스X, 5% 급락…美연준 금리동결에 인상 시그널까지 - 파이낸셜뉴스]. 여기에 전 세계 IT 생태계를 지배하는 마이크로소프트(-3.9%), 전자상거래의 제왕 아마존(-3.5%), 구글의 심장 알파벳(-2.6%) 등 시장을 이끄는 대장주들이 일제히 약세를 보이며 전체 지수를 깎아내렸습니다 [워시發 매파 쇼크에 뉴욕증시 급락…시장, 10월 금리인상 베팅 [월스트리트in]]. 더불어, 최근 주식 시장의 뜨거운 감자인 AI 반도체의 핵심, 엔비디아의 주가 급락 소식마저 다른 AI 및 반도체 관련 주식들에 동반 매도 신호로 작용하며 하락세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뉴욕증시, 엔비디아 주가 급락이 매도 신호가 되며하락마감…나스닥…].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 에너지 시설 피격 소식에 따른 국제 유가의 급등과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국가 간의 갈등이 경제에 미치는 위험)까지 불거지며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유가 급등·매파신호에뉴욕증시급락…중동 리스크에 시장 흔들].
하지만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시장에 먹구름만 낀 것은 아닙니다. 위기를 기회로 보는 냉철한 시선도 존재합니다. 세계적인 금융기관 JP모건 체이스의 전략가 미슬라브 마테이카(Mislav Matejka)는 다소 다른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국제 분쟁 등 지정학적인 긴장 상황으로 인해 원유 가격이 요동치고 있는 현재의 변동성을 고려할 때, 오히려 연준이 당초 우려했던 것만큼 강하게 경제를 조이는 긴축 정책(금리 인상)을 끝내 실행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에게 주가가 겁에 질려 약세를 보이며 떨어질 때를 오히려 우량주를 싸게 살 수 있는 저가 매수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하기도 했습니다 [[뉴욕증시] FOMC 앞두고 유가하락…나스닥1%대상승 마감].
투자자들의 시선은 벌써 올가을을 향해 있습니다. 주식 시장이라는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참여자들은 끊임없이 중앙은행의 다음 수를 예측하며 자금을 움직입니다. 현재 시장은 연준이 던진 단호한 경고를 바탕으로, 다가오는 10월에 연준이 실제로 금리 인상의 방아쇠를 당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베팅의 방향을 수정하고 있습니다 [워시發 매파 쇼크에 뉴욕증시 급락…시장, 10월 금리인상 베팅 [월스트리트in]].
당분간 증시는 고용 지표, 물가 상승률(인플레이션) 등 작은 경제 데이터 하나하나가 발표될 때마다 마치 예민한 온도계처럼 민감하게 반응할 것입니다. 일자리가 얼마나 늘어났는지, 마트의 물건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에 따라 연준의 마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맑은 하늘에 언제 다시금 경고 방송이 울릴지 모르는, 본격적인 ‘변동성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연준 의장의 단호한 태도에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한 것은 주식 계좌를 확인하는 투자자로서 꽤나 뼈아픈 일입니다. 당장 눈앞의 파란 숫자들은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하죠. 하지만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해 보면,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릴 수도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미국 경제의 심장이 금리라는 무거운 짐을 이겨낼 만큼 튼튼하게 뛰고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체력이 약한 환자에게는 결코 독한 약을 처방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시장의 과열된 기대감과 중앙은행의 냉정한 현실 인식 사이에서 벌어진 전형적인 줄다리기가 이번 주가 하락의 본질입니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당황하여 우산을 집어 던지기보다는, 이 소나기가 잠시 지나가는 비일지 아니면 긴 장마의 시작일지 경제 지표라는 구름의 움직임을 차분히 관찰해야 할 시점입니다. 투자에서는 흔들리는 시장의 분위기보다 흔들리지 않는 경제의 기초 체력을 믿는 것이 늘 승률이 높았습니다.